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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뒤바꿀 발굴 나와..中서 신라 왕자의 묘 발견돼

작성 : 2025.06.17. 오후 03:34
 약 1천200년 전 당나라 시기 중국에 머물렀던 신라 왕족의 무덤이 발굴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무덤 안에서 죽은 이의 신분과 이름이 상세히 기록된 묘지(墓誌)가 온전히 발견돼 학계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16일 고고학계에 따르면, 중국 산시성(陝西省) 고고연구원은 시안(西安)시 옌타(雁塔)구에 위치한 ‘M15호’ 무덤을 정밀 발굴한 결과를 최근 보고서로 공개했다. 이 무덤은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長安, 현재 시안)에서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과거에 도굴 피해를 입은 적이 있지만, 2022년 6월 재조사 과정에서 돌로 된 묘지와 80여 점에 달하는 부장품이 새롭게 발견됐다.

 

이번 발굴로 확인된 묘지석에는 ‘대당고김부군묘지명’(大唐故金府君墓誌銘)이라는 9자의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고, 묘지 뚜껑돌과 몸통 돌에는 총 557자의 문자가 기록되어 있어 무덤 주인의 신분과 생애가 자세히 밝혀졌다. 연구진은 이 무덤의 주인이 ‘질자’ 신분의 신라 출신 김영(金泳)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질자’는 외교 관계에서 상대국에 파견되는 왕족이나 유력 대신의 자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김영은 당나라에서 외교적 임무를 수행한 신라 왕족 출신 인물임이 밝혀졌다.

 

충북대 김영관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묘지 첫 줄에 ‘당 신라국 고 질자 번장 조산대부 시위위 소경 김군 묘지명’이라는 문구가 있어 무덤 주인의 출신과 관직, 성씨가 명확히 드러난다”며 “김영은 747년에 태어나 794년 5월 1일 향년 48세로 생을 마감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김영은 황궁 무기와 의장을 담당하던 시위위(侍衛衛)의 관리로, 이주민과 상인을 감독하고 공물을 관리하는 외국인 출신 관원인 ‘번장’ 직무를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굴된 김영의 묘지는 중국에서 공식 발굴로 확인된 최초의 신라인 남자 귀족 묘지로 평가받는다. 김 교수는 “묘지 비문에는 그의 조부가 신라에서 당나라로 와 황제의 경호 임무를 맡았던 김의양(金義陽)으로 기록돼 있다”고 덧붙였다. 김의양은 신라 국왕의 사촌 형으로 소개되며, 당나라에 파견된 신라 왕족으로서 외교 사절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학계에서는 김영 묘지를 통해 8세기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외교적 교류와 인적 왕래를 증명하는 중요한 역사적 단서가 확보됐다고 평가한다. 서울시립대 안정준 교수는 “기존 기록에선 신라 왕족이 질자 임무를 대대로 세습한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며 “3대에 걸쳐 질자 역할을 수행한 김씨 가문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난 점이 매우 주목된다”고 말했다.

 

출토된 유물도 주목할 만하다. 무덤에서는 흙으로 만든 동물과 사람 형상 조각, 탑 모양 항아리, 당나라 시기 금속 화폐인 ‘개원통보’ 등이 발견되었다. 특히 십이지신상 일부가 포함돼 있어 당시 중국과 신라 문화가 혼합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연세대 하일식 교수는 “무덤에서 중국식 문인상과 무인상이 함께 출토된 점은 두 문화의 조화와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김영의 묘지와 부장품을 포함한 발굴 성과는 중국 고고연구원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고고여문물’ 최신호에 게재되어 있다. 국내외 역사학자들은 이번 발견이 8세기 동아시아 외교사와 한중 관계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하며, 추가 연구와 발굴을 기대하고 있다. 이번 무덤 발굴은 신라 왕족이 당나라에서 어떠한 지위와 역할을 수행했는지 구체적인 증거를 제공하며,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 교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